수학 개념 지도
인물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Austin Bradford Hill)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의학에 들여오고 리처드 돌과 함께 흡연이 폐암의 원인임을 밝혔으며, 관찰 자료로 인과⁠(causation)⁠를 판단할 관점들을 정리한 영국의 의학통계학자.

오즈비=647/2622/27≈14\text{오즈비} = \frac{647/2}{622/27} \approx 14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은 1897년 런던에서 생리학자 레너드 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0세기 초의 의학에서 치료가 듣는지는 대개 의사의 경험과 인상으로 판단했습니다. 통계⁠(statistics)⁠는 사망 원인을 집계하는 행정의 일이었고, 실험의 설계와 해석에 쓰이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의사가 되려던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해군 항공대 조종사로 에게해에서 복무하다 폐결핵에 걸렸습니다. 오랜 요양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의대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그는 통신 과정으로 런던 대학의 경제학 학위를 받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역학자 메이저 그린우드의 권유로 통계학을 통해 의학에 돌아왔습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칼 피어슨의 강의를 들으며 통계를 익혔고(골턴 연구소와 로담스테드), 1927년 그린우드가 있던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1937년 의학 학술지 『랜싯』에 연재한 강의는 수식을 거의 쓰지 않고 평균⁠(mean)⁠, 흩어짐, 우연에 의한 차이, 비교할 무리를 어떻게 고르는지를 의사들에게 가르쳤고, 책으로 묶여 여러 판을 거듭했습니다. 흩어짐을 모르면 두 무리의 차이가 우연인지 알 수 없고, 비교 대상을 잘못 고르면 차이가 치료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강의의 뼈대였습니다.

그가 들어선 영국 공중보건 통계에는 긴 전통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등기청의 윌리엄 파가 출생과 사망을 원인별로 집계하는 체계를 세웠고, 존 스노가 콜레라의 원인을 물 공급 회사별 사망자 수로 가려낸 것도 이 자료 위에서였습니다. 20세기 들어 정부의 의학연구위원회가 생기자 그린우드는 그 통계 부서를 이끌었고, 젊은 힐은 위원회 산하의 산업 보건 연구 기관에서 일하며 직업과 질병의 관계를 조사하는 현장 경험을 쌓았습니다. 1924년 문을 연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은 미국 록펠러 재단의 기부로 1929년 블룸즈버리에 새 건물을 지었고, 대영 제국 곳곳의 보건 관리들이 이곳에서 역학과 통계를 배워 돌아갔습니다. 힐의 강의는 이 학생들을 통해 식민지와 영연방의 보건 행정으로도 퍼졌습니다.

그의 생각이 처음 크게 시험된 것은 전쟁 직후였습니다. 결핵약 스트렙토마이신이 나왔지만 달러가 모자랐던 영국은 조금밖에 들여올 수 없었고, 영국 의학연구위원회는 모든 환자에게 줄 약이 없다는 사정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의 설계에 따라 폐결핵 환자 107명을 봉투 속 난수로 약을 받는 무리와 침상 안정만 하는 무리로 나누었습니다. 환자를 받는 의사는 다음 봉투의 내용을 몰랐고, 엑스선 사진을 판정하는 의사도 누가 약을 받았는지 몰랐습니다. 의사가 고르면 가벼운 환자가 약을 받아 효과가 부풀려질 수 있는데, 제비뽑기는 그런 치우침을 막고 보이지 않는 중증도까지 두 무리에 고르게 나눕니다. 로널드 피셔가 밭에서 세운 원리를 병원으로 옮긴 것입니다. 1948년 발표된 결과는 6개월 동안 약을 받은 55명 가운데 4명, 받지 않은 52명 가운데 14명이 죽었다는 것이었고, 이 시험은 무작위 대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이 결과가 나온 1948년은 영국이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진료하는 국민보건서비스를 시작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나라가 치료비를 모두 대게 되자 어떤 치료가 실제로 듣는지를 가리는 일은 의사 한 사람의 판단을 넘어 공공의 문제가 되었고, 힐이 세운 시험 방식은 백일해 백신과 여러 치료법의 시험으로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반발도 있었습니다. 환자마다 가장 좋다고 믿는 치료를 주는 것이 의사의 의무라는 생각과, 제비뽑기로 치료를 정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오래 따라다녔습니다. 힐은 효과를 모르는 치료라면 아무도 가장 좋은 쪽을 알지 못하니 제비뽑기가 오히려 정직하다고 답했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다음 세대 가운데 아치 코크런은 1972년 의료의 효과를 무작위 시험으로 체계적으로 검증하자고 호소했고, 이 흐름이 뒤에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으로 자랐습니다.

같은 무렵 영국에서는 폐암 사망이 25년 사이에 열다섯 배쯤 늘어나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이자 역학자인 리처드 돌(1912–2005)과 함께 런던의 여러 병원에서 폐암 환자마다 나이와 성별이 같은 다른 병의 환자를 짝지어 흡연 습관을 물었습니다(환자–대조 연구⁠, case-control study⁠). 1950년 발표한 결과에서 폐암에 걸린 남성 649명 가운데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사람은 2명, 짝지은 환자 649명 가운데서는 27명이었습니다. 오즈⁠(odds)⁠는 어떤 쪽에 속한 사람 수를 속하지 않은 사람 수로 나눈 값입니다. 폐암 환자 무리에서 흡연자 대 비흡연자의 오즈는 647/2, 짝지은 무리에서는 622/27이고, 위의 식처럼 이 두 오즈를 나눈 오즈비⁠(odds ratio)⁠는 약 14입니다. 이 연구가 직접 재는 것은 폐암 환자 가운데 흡연자의 비율, 곧 P(흡연∣폐암)P(\text{흡연} \mid \text{폐암})이고 알고 싶은 것은 거꾸로 P(폐암∣흡연)P(\text{폐암} \mid \text{흡연})이라서, 둘을 잇는 데는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과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가 필요합니다. 병이 드물면 이 오즈비가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발병 위험의 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이듬해 미국의 통계학자 제롬 코른필드가 보인 결과입니다. 기억의 치우침을 피하려고 두 사람은 1951년 영국 의사 명부의 의사들에게 흡연 습관을 묻는 편지를 보냈고, 약 4만 명이 답했습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 습관을 묻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다리는 코호트 연구⁠(cohort study)⁠로, 1954년 첫 보고가 나왔고 추적은 5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많이 피울수록 위험이 커지고, 끊으면 줄어든다는 결과였습니다.

이 결론에 가장 날카롭게 맞선 사람은 무작위 배정⁠(random assignment)⁠의 아버지 피셔였습니다. 흡연과 폐암을 함께 일으키는 체질이 있다면 담배가 무해해도 둘은 함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교란). 사람에게 흡연을 제비뽑기로 배정할 수는 없으니, 무작위 시험 없이 원인을 말할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1965년 강연 「환경과 질병: 연관인가 인과인가?」에서 그는 연관의 강도, 여러 연구에서의 일관성, 특이성, 원인이 먼저라는 시간 순서, 양이 늘면 결과도 커지는 양–반응 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 생물학적 개연성, 알려진 사실과의 정합성, 실험적 증거, 유비라는 아홉 가지 관점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기계적으로 적용할 규칙이 아니라고 거듭 말했습니다. 같은 강연에서 그는, 모든 과학적 지식은 불완전하고 뒤집힐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지식이 요구하는 행동을 미룰 자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담배 논쟁은 영국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돌과 힐의 논문이 나온 1950년, 미국에서도 의대생 에른스트 와인더와 외과의 에바츠 그레이엄이 같은 결론의 환자–대조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1959년 제롬 코른필드와 동료들은 피셔의 반론에 수학으로 답했습니다. 흡연자의 폐암 위험이 비흡연자의 아홉 배라는 것을 숨은 체질 하나로 모두 설명하려면, 그 체질이 흡연자에게 적어도 아홉 배 더 흔해야 한다는 부등식입니다. 그렇게 강한 교란 요인이 아무 흔적 없이 숨어 있기는 어렵다는 이 논증은 오늘날 관찰 연구⁠(observational study)⁠의 결론이 숨은 교란에 얼마나 버티는지 재는 민감도 분석⁠(sensitivity analysis)⁠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64년 미국 공중보건국장의 보고서는 연관의 강도, 일관성, 특이성, 시간 순서, 정합성 같은 기준으로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담배 회사들은 그 뒤에도 수십 년 동안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의심을 퍼뜨리는 데 막대한 돈을 썼고, 1969년의 한 담배 회사 내부 문서는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라고 적었습니다. 돌은 1950년의 결과를 본 뒤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는 1961년 기사 작위를 받고 은퇴했고, 1991년 아흔셋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새 약이 무작위 대조 시험을 거쳐야 승인되는 것과, 관찰 연구를 읽을 때 '브래드퍼드 힐 기준'을 따져 보는 것은 모두 그에게서 비롯된 관행입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이 오해 없이 전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관점'이라 부르며 체크리스트가 아니라고 거듭 말한 아홉 가지는 흔히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점수를 매기는 목록처럼 쓰였고, 특이성처럼 한 원인이 한 병만 일으켜야 한다는 관점은 흡연이 여러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20세기 말 이후 역학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화살표로 잇는 인과 그래프⁠(causal graph)⁠, '그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비교하는 반사실⁠(counterfactual)⁠ 모형, 부모에게서 무작위로 물려받는 유전자 변이를 자연의 제비뽑기처럼 쓰는 멘델 무작위화⁠(Mendelian randomization)⁠ 같은 새 도구로 그의 물음을 다시 다룹니다. 무작위 배정이 할 수 없는 곳에서 원인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그의 물음은 여전히 통계학과 의학의 중심에 있습니다(무작위성).

이어지는 곳. 제비뽑기가 왜 치우침을 없애는지는 무작위 대조 시험과, 무리가 클수록 두 무리의 우연한 차이가 줄어든다는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에서 이어집니다. 관찰 자료의 함정은 숨은 공통 원인이 가짜 연관을 만드는 교란, 무리를 합치면 관계가 뒤집히는 심슨의 역설⁠(Simpson's paradox)⁠, 유난히 나쁜 상태에서 시작한 환자는 치료와 상관없이 나아 보이는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에서 이어집니다. 무작위 시험이 없을 때 원인을 찾은 앞선 예는 존 스노의 콜레라 연구이고, 그가 말로 정리한 인과 판단을 기호로 적는 언어는 펄의 인과 그래프입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로널드 피셔 — 피셔가 밭에서 세운 무작위 배정의 원리를 1948년 스트렙토마이신 시험에서 환자에게 옮겼습니다.

연표.

  • 1922년 통신 과정으로 런던 대학의 경제학 학위를 받다
  • 1927년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에 들어가다
  • 1937년 『랜싯』에 의사를 위한 의학 통계 강의를 연재하다
  • 1945년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의 의학통계 교수가 되다
  • 1948년 스트렙토마이신 무작위 시험의 결과를 발표하다
  • 1950년 리처드 돌과 폐암 환자–대조 연구를 발표하다
  • 1951년 영국 의사 4만여 명을 추적하는 코호트 연구를 시작하다
  • 1954년 영국 의사 연구의 첫 결과를 발표하다
  • 1961년 기사 작위를 받고 은퇴하다
  • 1964년 미국 공중보건국장 보고서가 흡연을 폐암의 원인으로 결론짓다
  • 1965년 연관을 인과로 판단할 아홉 가지 관점을 발표하다
이 개념이 나오는 큰 생각무작위성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통계와 인과 담배와 폐암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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