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칼 피어슨(Karl Pearson)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 카이제곱 검정⁠(chi-squared test)⁠, 주성분 분석⁠(principal component analysis)⁠을 만들어 통계학⁠(statistics)⁠을 대학의 학문으로 세운 영국의 통계학자. 우생학⁠(eugenics)⁠의 주창자이기도 했다.

r=∑i(xi−xˉ)(yi−yˉ)∑i(xi−xˉ)2 ∑i(yi−yˉ)2r = \frac{\sum_i (x_i - \bar x)(y_i - \bar y)}{\sqrt{\sum_i (x_i - \bar x)^2}\,\sqrt{\sum_i (y_i - \bar y)^2}}

칼 피어슨은 1857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해 1879년 졸업 시험에서 3등을 했고,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에서 물리학과 철학, 법학, 독일 문학까지 두루 공부한 뒤 1884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응용수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다윈의 진화론이 생물학을 바꾸고 있었지만, 한 무리 안의 변이와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해지는 형질을 수로 다룰 도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윈의 사촌 골턴이 키를 재어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를 발견하고 유전의 세기를 재려 했고, 그 생각을 체계적인 수학, 곧 오늘날의 통계학으로 만든 사람이 피어슨이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통계학자가 되기 전의 그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급진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 마르크스와 중세 독일 문학에 빠져 사회주의 강연을 했고, 1885년에는 여성 작가 올리브 슈라이너 등과 함께 남녀의 관계와 여성의 지위를 터놓고 토론하는 '남성과 여성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1889년 이 클럽에서 그는 막 나온 골턴의 『자연 유전』을 두고 강연했는데, 처음에는 수학을 생물에 적용하는 데 조심스러운 입장이었지만 곧 이 책이 열어 준 길에 빠져들었습니다. 1891년부터는 시민을 위한 공개 강좌를 열던 그레셤 칼리지의 기하학 교수를 겸하며 일반 청중에게 도표와 확률⁠(probability)⁠, 통계를 가르쳤고, 이 강의들에서 『과학의 문법』과 뒤의 통계 연구가 나왔습니다. 『과학의 문법』은 베른의 특허청 직원이던 젊은 아인슈타인과 친구들이 만든 독서 모임 '올림피아 아카데미'가 함께 읽은 첫 책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계기는 1890년대 동료 동물학자 월터 웰던과의 협업이었습니다. 웰던이 게와 새우의 몸 치수를 재어 오면 피어슨은 그 분포를 읽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흩어진 정도를 재는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라는 이름을 처음 쓴 것도, 종 모양의 오차 곡선을 '정규 곡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뜨린 것도 그였습니다(정규분포⁠, normal distribution⁠). 자료가 종 모양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를 위해서는 평균⁠(mean)⁠, 분산⁠(variance)⁠, 치우침 같은 적률(평균에서 떨어진 거리를 제곱, 세제곱해 평균 낸 값들)로 곡선을 맞추는 방법과 한 무리의 곡선족을 내놓았습니다.

1896년 무렵 그는 두 변수가 함께 변하는 정도를 재는 상관계수를 위의 식으로 다듬었습니다. 두 값에서 각각 평균을 빼고, 편차의 곱을 더한 뒤, 각자의 흩어진 정도로 나눕니다. 평균을 뺀 두 자료를 벡터⁠(vector)⁠로 보면 이것은 두 벡터가 이루는 각의 코사인⁠(cosine)⁠, 곧 코사인 유사도⁠(cosine similarity)⁠이고, 그래서 값이 언제나 −1과 1 사이에 있습니다(어느 한쪽 값이 모두 같아 흩어짐이 0이면 정의되지 않습니다). 피어슨은 1892년의 『과학의 문법』에서, 과학은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 어떻게 함께 일어나는지 기술할 뿐 그 너머의 까닭을 말하지 않는다는 실증주의를 폈고, 뒤의 판에서는 '원인'이라는 낡은 관념을 더 넓은 범주⁠(category)⁠인 상관으로 바꾸자고까지 썼습니다. 한편 1899년에는 두 무리를 합치면 무리마다의 관계가 뒤집혀 보일 수 있다는, 오늘날 심슨의 역설⁠(Simpson's paradox)⁠이라 부르는 현상을 일찍이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상관만으로는 교란을 가려낼 수 없다는 경고가 그의 연구 안에 이미 있었던 셈입니다.

1900년 그는 관찰한 도수가 이론이 예측한 도수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수 하나로 재는 카이제곱 검정을 발표했습니다. 칸마다 (관찰 − 기대)²/기대를 더한 값이 우연히 그만큼 커질 확률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는 웰던이 주사위 열두 개를 26,306번 던져 기록한 자료에 이 검정을 써서, 공정한 주사위라면 나오기 어려운 결과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이항분포⁠, binomial distribution⁠). 이듬해에는 점들에 가장 가까이 지나는 직선과 평면을 찾는 논문을 냈습니다. 선형 회귀가 세로 방향의 어긋남을 줄이는 데 비해 이것은 점에서 직선에 수선⁠(perpendicular)⁠을 내려 잰 거리, 곧 정사영⁠(orthogonal projection)⁠의 오차를 줄이며, 오늘날의 주성분 분석입니다. 같은 1901년 그는 웰던, 골턴과 함께 학술지 『바이오메트리카』를 창간해 30년 넘게 편집했습니다. 기네스 양조장의 윌리엄 고셋이 '스튜던트'라는 필명으로 t 분포⁠(t-distribution)⁠를 발표한 곳도, 캘커타의 마할라노비스가 우연히 읽고 통계학에 빠진 곳도 이 학술지였습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그의 연구실은 20세기 통계학의 첫 공장이었습니다(골턴 연구소와 로담스테드). 런던의 동업 조합인 드레이퍼스 컴퍼니가 1903년부터 돈을 댄 생물측정 연구실과, 1907년 골턴의 기부로 그가 맡은 우생학 연구실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표를 만드는 일은 대개 젊은 여성 '계산원'들이 손으로 돌리는 계산기로 했고, 그 결과가 1914년의 『통계학자와 생물측정학자를 위한 표』로 묶여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연구자의 책상에 놓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같은 사람들과 기계가 군수부를 위해 포탄과 대공포의 탄도표를 계산했습니다. 연구실에는 기네스 양조장의 고셋처럼 실무의 문제를 들고 온 방문자와 제자들이 드나들었지만, 피어슨은 제자이자 동료였던 조지 유를 두고도 분할표(사람들을 예방접종 여부와 발병 여부처럼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칸마다 수를 센 표)의 연관을 재는 방법을 놓고 몇 해 동안 날 선 논문을 주고받는 등, 자기 방식과 다른 생각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의 가장 큰 싸움은 유전을 둘러싼 것이었습니다. 1900년 그레고어 멘델의 유전 법칙이 다시 발견되자, 케임브리지의 윌리엄 베이트슨은 형질이 띄엄띄엄한 단위로 전해진다는 멘델 유전학을 앞세웠고, 피어슨과 웰던은 연속적으로 변하는 형질의 상관을 재는 생물측정학⁠(biometry)⁠이 옳은 길이라고 맞섰습니다. 학회와 학술지에서 몇 해 동안 이어진 이 싸움은 1906년 웰던이 마흔여섯 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동력을 잃었지만, 두 진영의 화해는 1918년 피셔가 두 이론이 사실은 같은 것을 다른 척도에서 본 것임을 보이고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논문을 왕립학회에서 심사해 반려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피어슨이었다고 전합니다.

그의 통계학에는 처음부터 어두운 목적이 함께 있었습니다. 골턴이 이름 붙인 우생학을 그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밀었습니다. 1900년의 강연 「과학의 관점에서 본 국민의 삶」에서는 국가들이 생존을 걸고 경쟁한다며 이른바 열등한 인종과의 경쟁을 정당화했고, 1911년 골턴의 유산으로 만든 첫 우생학 석좌교수가 되었으며, 1925년 창간한 『우생학 연보』 첫 호에는 유대인 이민 아동이 평균적으로 열등하니 이민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의 논문을 공저로 실었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여러 나라의 이민 제한과 강제 불임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쓰였습니다. 한편 그는 1911년 세계 첫 대학 통계학과를 열어 많은 여성 연구자를 받아들였고, 그의 연구실에서 일한 앨리스 리는 머리뼈 용량⁠(capacity)⁠으로 지능을 가늠할 수 있다는 당시의 주장을 자료로 반박했습니다. 2020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은 골턴과 피어슨의 이름을 건물과 강의실에서 떼어 냈습니다. 그의 방법은 오늘날 거의 모든 과학이 쓰지만, 그 방법으로 뒷받침하려 한 인종과 계급의 주장은 과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는 논쟁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멘델 유전학을 앞세운 윌리엄 베이트슨과 오랫동안 다투었고, 1920년대에는 젊은 피셔가 분할표⁠(contingency table)⁠의 카이제곱 검정에서 그가 자유도⁠(degrees of freedom)⁠, 곧 행과 열의 합계가 정해진 뒤에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칸의 수를 잘못 셌다고 지적하자 끝내 인정하지 않아 두 사람은 평생 앙숙이 되었습니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그는 1920년 대영 제국 훈장과 1935년 기사 작위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1933년 은퇴하자 그의 학과는 둘로 나뉘어, 통계학은 아들 이건 피어슨이, 골턴 석좌는 피셔가 이어받았습니다.

그의 도구들은 생물학 밖으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1904년 심리학자 찰스 스피어먼은 여러 과목 성적 사이의 상관을 분석해 공통의 '일반 지능'이 있다고 주장했고, 여기서 여러 측정값 사이의 상관을 적은 수의 숨은 공통 요인으로 설명하는 요인 분석⁠(factor analysis)⁠이 자랐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물가와 임금의 상관을, 기상학자들은 먼 지역 날씨 사이의 상관을 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1901년에 내놓은 주성분 분석은 한동안 잊혔다가 1933년 미국의 해럴드 호텔링이 따로 다시 만들었고, 컴퓨터 시대에 들어서야 자료를 요약하는 기본 도구가 되었습니다. 평가는 엇갈립니다. 그는 통계를 과학의 공통 언어로 만들었지만, 인과⁠(causation)⁠를 상관으로 대신하자는 그의 실증주의는 반세기 넘게 통계학이 원인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연구자 주디아 펄은 이 금기를 깨는 것을 자기 인과 추론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이어지는 곳. 상관계수가 무엇을 재고 무엇을 재지 못하는지는 상관계수와 교란에서, 여러 변수의 상관을 한꺼번에 다루는 방법은 주성분 분석과 마할라노비스 거리⁠(Mahalanobis distance)⁠에서 이어집니다. 상관에서 인과로 가는 길은, 처리를 제비뽑기로 배정해 교란을 끊은 피셔의 무작위 실험과 그 방법을 병원으로 옮겨 리처드 돌과 함께 흡연과 폐암의 관계를 밝힌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의 임상시험을 거쳐,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화살표 그림으로 적는 펄의 인과 그래프⁠(causal graph)⁠에 이릅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프랜시스 골턴 — 골턴의 『자연 유전』(1889)을 읽고 통계로 들어섰고, 그의 후원으로 연구실을 꾸렸으며, 그가 죽은 뒤 세 권(네 책)짜리 전기를 썼습니다.
  • 논쟁 로널드 피셔 — 상관계수의 분포, 카이제곱 검정의 자유도, 멘델 유전학을 두고 부딪혀,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제자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 — 의대에 갈 수 없게 된 힐이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그의 강의를 들으며 통계를 익혔습니다.
  • 영향을 줌 프라산타 찬드라 마할라노비스 — 그가 펴낸 『바이오메트리카』를 케임브리지에서 읽은 마할라노비스가 그 묶음을 들고 인도로 돌아가 통계학을 시작했습니다.

연표.

  • 1879년 케임브리지를 수학 3등으로 마치고 독일로 공부하러 가다
  • 1884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응용수학 교수가 되다
  • 1885년 남녀 문제를 토론하는 '남성과 여성 클럽'을 만들다
  • 1889년 골턴의 『자연 유전』을 읽고 클럽에서 강연하다
  • 1891년 그레셤 칼리지의 기하학 교수가 되어 통계를 강의하기 시작하다
  • 1892년 『과학의 문법』을 펴내다
  • 1896년 상관계수를 유전 연구의 도구로 다듬다
  • 1900년 카이제곱 적합도 검정을 발표하다
  • 1901년 『바이오메트리카』를 창간하고 주성분 분석을 내놓다
  • 1906년 동료 웰던이 세상을 떠나다
  • 1907년 골턴 우생학 연구실을 맡다
  • 1911년 세계 첫 대학 통계학과를 열고 골턴 우생학 석좌교수가 되다
  • 1914년 『통계학자와 생물측정학자를 위한 표』와 골턴 전기 첫 권을 펴내다
  • 1925년 『우생학 연보』를 창간하다
  • 1933년 은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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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도박판에서 온 편지 1654년, 도중에 멈춘 내기의 판돈을 어떻게 나눌까? 두 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확률론이 태어났다. 최소제곱과 선형대수 잃어버린 소행성 1801년, 발견 몇 주 만에 태양 뒤로 사라진 세레스. 스물네 살의 가우스는 흩어진 관측값에서 궤도를 되찾았다. 통계와 인과 담배와 폐암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거리와 유사도 까마귀와 택시 까마귀는 곧장 날고 택시는 블록을 돌아간다. '얼마나 먼가'에는 답이 하나가 아니고, 어떤 거리를 고르느냐가 통계와 기계 학습의 답을 바꾼다. 라플라시안 라플라시안, 가장 많이 재사용된 식 이웃의 평균에서 나를 뺀다. 이 한 줄이 열의 법칙이고, 도박꾼이 이길 확률이고, 전기 회로와 나무 세기이고, 북의 음색이고, 사진의 윤곽선이고, 그래프를 가르는 칼이고, 잡음에서 그림을 빚는 확산 모델의 밑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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