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전기와 자기와 빛을 방정식 몇 개로 묶고, 기체 분자의 속도(velocity)에 확률(probability) 분포를 처음 들여온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183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남서부 시골의 집안 영지 글렌레어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시대에 전기와 자기는 영국의 실험 물리학자 패러데이의 실험으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수학을 거의 쓰지 않은 패러데이의 '힘의 선'은 많은 물리학자에게 그림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열은 분자들의 운동이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지만, 수많은 분자를 어떻게 다룰지는 막막했습니다. 맥스웰은 앞의 문제에서 빛의 정체를, 뒤의 문제에서 물리학에 확률을 들여오는 길을 찾았습니다.
나이
여덟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에든버러의 학교에서는 시골 옷차림과 말씨 때문에 '얼간이'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열네 살에 핀과 실로 달걀꼴 곡선을 그리는 방법을 다룬 논문을 써서 에든버러 왕립학회에서 발표되게 했습니다(나이 때문에 교수가 대신 읽었습니다). 에든버러 대학과 케임브리지를 거쳐 1854년 차석 랭글러로 졸업했고, 애버딘과 런던에서 가르친 뒤 1871년 케임브리지에 새로 생긴 캐번디시 연구소의 초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거친 케임브리지의 수학 졸업 시험 트라이포스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 과학의 관문이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어려운 문제를 빠르게 푸는 시험이어서 학생들은 전문 개인 교사에게 몇 해씩 훈련을 받았고, 1등 '시니어 랭글러'의 이름은 신문에까지 났습니다. 맥스웰은 이름난 교사 홉킨스에게 배웠고, 차석으로 마친 뒤 더 어려운 스미스상 시험에서는 1등 라우스와 공동 수상했습니다. 그해 스미스상 시험에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스토크스가 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스토크스 정리라 부르는 정리를 증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860년 런던의 킹스 칼리지로 옮긴 뒤에는 이듬해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고, 왕립 연구소에서 늙은 패러데이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첫 큰 수학 작업은 토성의 고리였습니다. 고리가 단단한 판이라면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지고, 액체라면 파도처럼 부서진다는 것을 계산으로 보이고, 고리는 수많은 작은 알갱이가 저마다 궤도(orbit)를 도는 것이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1857년 이 논문으로 애덤스상을 받았습니다. 1895년 미국의 천문학자 킬러가 고리의 안쪽이 바깥쪽보다 빨리 돈다는 것을 분광 관측으로 보여 이 결론을 뒷받침했고, 한 세기 넘게 지나 보이저 탐사선이 알갱이들을 가까이서 보여 주었습니다. 이 경험은 '수많은 알갱이'를 다루는 다음 일로 이어졌습니다. 1860년 그는 기체 분자 하나하나의 속도를 따라가는 대신 속도의 분포를 물었습니다. 속도의 세 성분이 서로 독립(independence)이고 분포가 방향에 상관없다는 두 가정만으로, 각 성분이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끌어냈습니다.
이 발상에는 뜻밖의 경로가 있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열아홉 살의 맥스웰이 1850년 천문학자 존 허셜이 벨기에의 통계학자 케틀레의 사회 통계(statistics)를 소개한 서평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데 주목합니다. 사람들의 키와 가슴둘레가 흩어지는 방식을 다루던 오차의 법칙이 분자의 속도로 옮겨 간 셈입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1858년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가 분자가 다른 분자와 부딪히기 전까지 가는 평균(mean) 거리를 따진 논문이었습니다. 1860년 논문에서 맥스웰은 기체의 끈적임, 곧 점성이 압력과 상관없다는 뜻밖의 예측을 끌어냈고, 1866년 아내 캐서린과 함께 런던 집 다락에서 한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습니다. 빈의 볼츠만이 이 길을 이어 엔트로피(entropy)를 확률로 해석했고, 미국의 깁스가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물리 법칙이 수많은 알갱이에 대한 평균이라는 생각은 무작위성의 역사에서 한 전환점입니다.
전자기에서는 패러데이의 힘의 선을 식으로 옮겼습니다. 1861–62년 그는 전기와 자기를 매질 속의 역학 모형으로 그리다가, 변하는 전기장이 전류처럼 자기장을 만든다는 항(변위 전류, displacement current)을 더했습니다. 그러자 방정식에서 파동방정식(wave equation)이 나왔습니다. 그 파동의 속도는
그의 전자기 연구는 산업의 요구와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해저 전신이 퍼지면서 저항과 전류를 재는 공통 단위가 필요해졌고, 맥스웰은 1862년부터 톰슨의 제안으로 꾸려진 영국과학진흥협회의 전기 표준 위원회에서 저항의 단위를 재는 실험을 맡았습니다. 그의 이론에서 빛의 속도는 전기의 두 단위계 사이의 비율로 나타나는데, 1868년 그는 이 비율을 직접 재어 빛의 속도에 가까운 값을 얻었습니다. 1871년 케임브리지가 실험 물리학 교수 자리를 만들고 대학 총장 데번셔 공작이 연구소 건물을 기부하자, 맥스웰은 설계부터 맡아 1874년 캐번디시 연구소를 열었습니다. 말년에는 공작의 집안 사람인 18세기 과학자 헨리 캐번디시가 남긴 미발표 전기 실험 기록을 편집해 1879년에 펴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레일리와 J. J. 톰슨, 러더퍼드 아래에서 이 연구소는 전자(1897)와 중성자(1932)가 발견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원자핵 자체는 러더퍼드가 캐번디시로 오기 전 맨체스터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공학의 문제에서도 수학을 끌어냈습니다. 1868년 「조속기(governor)에 대하여」는 증기기관의 속도를 일정하게 붙드는 장치가 왜 때로 흔들리며 날뛰는지를 따졌습니다. 조속기는 회전(rotation)이 빨라지면 원심력(centrifugal force)으로 벌어지는 추가 증기 밸브를 조여 속도를 되돌리는 장치입니다. 작은 흔들림을 선형 미분방정식(linear differential equation)으로 쓰면 해는
1867년 친구인 에든버러의 물리학자 테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분자를 하나하나 보고 골라내는 작은 존재를 상상했습니다. 이 존재가 문을 여닫으면 일을 하지 않고도 한쪽을 뜨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맥스웰이 하려던 말은 열역학 제2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이 수많은 분자에 대한 통계 법칙이라는 것이었고, 이 존재에 '악마'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윌리엄 톰슨이었습니다(맥스웰의 악마(Maxwell's demon)). 이 역설은 한 세기 뒤 정보를 지우는 데 드는 열로 풀렸습니다. 그는 1879년 어머니와 같은 병인 복부의 암으로 마흔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방정식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가 죽을 무렵 이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헤비사이드와 아일랜드의 피츠제럴드, 영국의 로지 같은 물리학자들, 곧 '맥스웰주의자'들이 방정식을 다듬어 퍼뜨렸습니다. 1887–88년 헤르츠가 전파를 만들어 보이자 이론은 단숨에 인정받았고, 1901년 마르코니는 대서양 너머로 무선 신호를 보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푸앵카레가 1888년부터 소르본에서 맥스웰의 이론을 강의했습니다. 방정식이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의 문제는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special relativity)으로 이어졌고, 아인슈타인은 서재에 뉴턴, 패러데이와 함께 맥스웰의 사진을 걸어 두었다고 전합니다. 조속기 논문도 멀리 갔습니다. 1948년 미국의 수학자 위너는 되먹임(feedback)으로 스스로를 조절하는 기계와 생물의 과학에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이름을 붙이며, 맥스웰의 조속기 논문을 되먹임에 관한 첫 중요한 문헌으로 꼽았습니다. 작은 흔들림만 보고 방정식을 선형으로 근사해 안정성(stability)을 가리는 그의 방법은 지금도 제어 공학의 첫 장입니다.
이어지는 곳. 분자의 속도 성분이 따르는 분포는 정규분포이고, 수많은 분자의 평균이 안정된 온도와 압력이 되는 까닭은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에 있습니다. 그의 악마는 정보를 지우는 데 드는 열로 역설을 푼 맥스웰의 악마와 란다우어 원리(Maxwell's demon and Landauer's principle)와, 제2법칙의 양인 엔트로피로 이어집니다. 전자기파는 파동방정식에서, 조속기의 안정성은 선형 미분방정식과 그 근을 다루는 고유벡터(eigenvector)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시대의 윌리엄 톰슨, 사원수(quaternion)의 해밀턴, 그의 방정식에서 상대성 이론의 실마리를 본 푸앵카레를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관계.
- 영향을 줌 앙리 푸앵카레 — 푸앵카레는 1888년부터 소르본에서 맥스웰의 이론을 강의해 『전기와 광학』으로 펴냈고, 그 방정식이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따지다 상대성 이론의 문턱(threshold)에 이르렀습니다.
연표.
- 1846년 열네 살에 달걀꼴 곡선에 관한 논문을 쓰다
- 1854년 케임브리지를 차석 랭글러로 마치고 스미스상을 공동 수상하다
- 1855년 「패러데이의 힘의 선에 대하여」를 발표하다
- 1856년 애버딘의 머리셜 칼리지 교수가 되다
- 1857년 토성의 고리에 관한 논문으로 애덤스상을 받다
- 1860년 기체 분자의 속도 분포를 발표하고 런던 킹스 칼리지로 옮기다
- 1861년 세 가지 색 필터로 첫 컬러 사진을 보이고 왕립학회 회원이 되다
- 1862년 전기 표준 위원회에서 저항의 단위를 재는 실험을 시작하다
- 1865년 「전자기장의 동역학적 이론」을 발표하다
- 1866년 기체의 점성이 압력과 상관없음을 실험으로 확인하다
- 1868년 조속기의 안정성에 관한 논문을 쓰다
- 1871년 케임브리지의 초대 캐번디시 교수가 되다
- 1873년 『전기자기론』을 펴내다
- 1874년 캐번디시 연구소를 열다
- 1879년 헨리 캐번디시의 전기 실험 기록을 편집해 펴내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큰 수의 법칙
… 섞인 배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거의 확실히 그렇게 된다'는 통계 법칙입니다. 이 점을 파고든 사고 실험이맥스웰이 1867년 내놓은 맥스웰의 악마입니다. 분자를 하나하나 보고 칸막이 문을 여닫아 빠른 분자만 …
- 맥스웰의 악마와 란다우어 원리
1867년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피터 거스리 테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고 1871년 책 『열 이론』에서 한 …
- 사원수
… u\times\vec v) 입니다. 곧 내적에 음의 부호를 붙인 것과 벡터곱이 한꺼번에 나옵니다.맥스웰은 1873년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고』에서 사원수의 이런 표현을 곳곳에 썼고, 1880년대 ⟦조사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