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킨디(Al-Kindī)
9세기 바그다드에서 그리스 철학과 과학을 아랍어로 옮기고 해설한 철학자로, 글자의 빈도를 세어 암호를 푸는 방법을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글로 남겼다.
알킨디는 801년 무렵 이라크의 쿠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랍의 킨다 부족 귀족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쿠파의 총독이었다고 전합니다. 그가 자란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는 그리스어와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문헌을 아랍어로 옮기는 거대한 번역 운동(translation movement)의 중심이었습니다. 칼리프들은 번역가와 학자를 후원했고, 그들이 모인 곳을 흔히 지혜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알킨디는 이 번역 운동 한가운데서 그리스 철학을 아랍어로 해설한 첫 세대의 철학자였고, 그래서 '아랍의 철학자'라고 불립니다.
나이
새 수도, 새 종이. 바그다드는 762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만수르가 티그리스강 가에 세운 둥근 계획도시였습니다.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와 중국으로, 중앙아시아와 지중해로 이어지는 교역로가 이곳에서 만났고, 8세기 말에는 중국에서 전해진 종이 만드는 기술로 바그다드에 제지소가 들어섰다고 전합니다. 양피지나 파피루스보다 값싼 종이 덕분에 책을 베끼고 사고파는 일이 크게 늘었습니다. 번역 운동에는 여러 동기가 겹쳐 있었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궁정 문화를 이어받은 칼리프들에게 학문의 후원은 권위의 상징이었고, 천문학과 점성술, 의학은 실용적으로 필요했으며, 신학자들의 논쟁은 그리스 논리학을 무기로 요구했습니다. 알마문(재위 813–833)은 이 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한 칼리프로 꼽힙니다.
알킨디는 그리스어를 직접 옮기기보다는 번역가들을 모아 번역을 맡기고 다듬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스타트라는 번역가가 그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옮겼습니다. 그의 주변에서 옮겨지고 그가 손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은 실은 3세기 철학자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 일부를 풀어 쓴 것이었습니다. 플로티노스는 모든 것이 하나의 근원('일자')에서 흘러나온다고 본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를 연 사람인데, 이 잘못 붙은 이름 때문에 이슬람 세계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랫동안 신플라톤주의의 색을 띠었습니다. 그는 수학을 모르고는 철학에 이를 수 없다고 보았고, 산술과 기하(geometry), 천문, 음악 이론, 광학, 의학에 이르는 수백 편의 글을 썼다고 전합니다. 그 가운데 인도 숫자의 사용법을 다룬 책은 같은 바그다드의 알콰리즈미가 쓴 책과 함께 자릿값 표기와 0을 이슬람 세계에 퍼뜨리는 데 한몫했습니다.
진리는 어디서 오든. 칼리프 알무타심에게 바친 『제1철학에 관하여』에서 그는, 진리를 찾는 사람은 그 진리가 먼 민족이나 다른 나라에서 왔더라도 받아들이기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썼습니다. 외래 학문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던 시대에 그리스 학문을 옹호한 선언입니다. 그 무렵 바그다드에는 대수를 하나의 분야로 세운 알콰리즈미, 기계 장치와 기하에 밝았고 번역가들을 후원한 무사의 세 아들(바누 무사), 의학 번역의 대가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하란에서 와 바누 무사의 후원을 받은 수학자이자 번역가 타비트 이븐 쿠라가 있었습니다. 알킨디는 이들과 같은 도시, 같은 후원망 안에서 때로 경쟁하며 일했습니다.
철학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면서도 한 곳에서 갈라섰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고 보았습니다. 알킨디는 실제로 무한한 크기나 무한히 긴 과거는 있을 수 없다는 논증으로 세계에 시작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무한한 것에서 유한한 부분을 떼어 내면 남은 것이 유한하거나 무한해야 하는데 어느 쪽이든 모순이 생긴다는 식의 논증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실무한(actual infinity)은 없다'는 원칙을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에게 되돌린 셈이고, 6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필로포노스가 편 논증과도 닮았습니다. 이 논쟁은 이슬람과 중세 유럽의 신학에서 오래 이어졌습니다. 무한한 것에서 한 부분을 떼어 내도 여전히 전체만큼 크다는 이 역설은, 19세기 칸토어가 집합의 크기(cardinality)를 짝짓기로 정의하면서 모순이 아닌 무한의 성질이 됩니다. 자연수(natural number) 1, 2, 3, …에서 1을 떼어 낸 2, 3, 4, …도 n ↔ n + 1로 하나씩 남김없이 짝지어지니, 두 집합(set)은 크기가 같다고 말합니다(무한을 다루는 법).
수로 재는 자연. 그는 수학을 철학의 입구로 여겼을 뿐 아니라 자연을 재는 도구로 썼습니다. 라틴어로 『시각에 관하여』라 불린 광학서에서 그는 유클리드의 『광학』을 따라 눈에서 곧은 시선이 나간다고 보면서도, 시선이 사이사이 틈이 있는 가느다란 선들이 아니라 틈 없이 이어진 입체적인 빛의 다발이라고 고쳐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13세기 영국의 수도사이자 자연철학자 로저 베이컨 같은 학자들이 인용할 만큼 라틴 세계에서 읽혔습니다. 약학에서는 여러 약재를 섞은 약의 세기를 수로 계산하려 해서, 성질이 한 등급 오를 때마다 세기가 곱절이 된다는 규칙을 제안했다고 전합니다. 1등급이면 2배, 2등급이면 4배, 3등급이면 8배로, 등급이 산술적으로 오를 때 세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규칙입니다. 중세 라틴 세계의 의사들은 이 등급 이론을 놓고 오래 논쟁했습니다.
글자를 세다. 그의 이름이 오늘날 가장 자주 불리는 곳은 암호입니다. 『암호문(ciphertext) 해독에 관한 글』에서 그는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꾼 암호를 푸는 방법을 적었습니다. 먼저 같은 언어로 된 충분히 긴 글을 구해 글자마다 몇 번 나오는지 세어 빈도표를 만듭니다. 다음에 암호문의 글자도 세어, 가장 자주 나오는 글자를 그 언어에서 가장 흔한 글자에, 둘째로 흔한 글자를 둘째에 대응시켜 봅니다. 이것이 먹히는 것은 글이 길어질수록, 글자 i가 나온 횟수
그 뒤의 암호술. 필사본을 펴낸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의 논문은 빈도만 다룬 것이 아니어서, 어떤 글자 둘은 아랍어에서 이웃해 나오지 않는다는 식으로 글자 쌍의 성질을 이용하는 방법도 적었습니다. 그의 뒤로 아랍 세계에서는 13세기의 이븐 아들란이 해독에 필요한 글의 길이를 따졌고, 14세기 이븐 알두라이힘의 암호술은 15세기 알칼카샨디의 백과사전에 실려 남았습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궁정 외교에서도 빈도 분석이 쓰였고, 1467년 무렵 건축가이자 인문학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크기가 다른 두 원판을 겹친 암호 원판을 고안했습니다. 몇 글자마다 원판을 돌려 대응표를 바꾸면 같은 글자가 여러 다른 글자로 바뀌어, 암호문의 글자 빈도가 평평해지고 빈도 분석이 무뎌집니다. 암호를 만드는 쪽과 푸는 쪽의 이 경쟁은 20세기의 기계 암호까지 이어졌습니다.
궁정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칼리프 알무타심의 아들 아흐마드를 가르쳤고 여러 글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그의 후원자였던 칼리프들은 이성적 신학을 앞세운 무타질라파를 지지했는데, 알무타와킬이 그 노선을 거두면서 궁정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 무렵 궁정 학자였던 바누 무사의 모함으로 그가 서재를 빼앗겼다가 나중에 돌려받았다는 이야기가 13세기 이븐 아비 우사이비아의 의사 열전에 전합니다. 그는 873년 무렵 바그다드에서 죽었습니다. 그의 광학과 점성술 저작 일부는 라틴어로 옮겨져 중세 유럽에 '알킨두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16세기의 카르다노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열두 사람을 꼽으며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그를 넣었습니다.
이어지는 곳. 글자가 고르지 않게 나온다는 것이 곧 암호의 약점이라는 생각은, 섀넌이 글의 예측 가능성과 정보량을 비트로 잰 엔트로피(entropy)로 이어집니다. 글자와 낱말의 빈도로 언어를 보는 생각은, 러시아어 시에서 모음과 자음이 이어지는 빈도를 센 마르코프, 앞의 몇 글자로 다음 글자를 예측하는 n-그램(n-gram) 모델, 낱말의 빈도가 순위에 반비례한다는 지프의 법칙(Zipf's law)으로 이어집니다. 20세기에 에니그마(Enigma) 같은 기계 암호를 풀 때도 통계는 무기였고, 그 한가운데 튜링이 있었습니다. 규칙으로 언어를 적는 반대편의 전통은 파니니에서 시작합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유클리드 — 그의 광학서는 유클리드의 『광학』을 출발점으로 삼아 눈에서 나가는 시선의 이론을 고쳐 나갔습니다.
- 영향을 줌 지롤라모 카르다노 — 카르다노는 1550년 『섬세함에 관하여』에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열두 사람 가운데 하나로 알킨디를 꼽았습니다.
연표.
- 813년 알마문이 칼리프가 되다
- 820년 바그다드에서 칼리프 알마문의 후원을 받으며 학자로 일하다(무렵)
- 833년 알무타심이 칼리프가 되고 그 아들 아흐마드의 스승이 되다
- 847년 알무타와킬이 칼리프가 되면서 궁정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다
- 850년 글자의 빈도로 암호문을 푸는 방법을 적다(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