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페아노(Giuseppe Peano)
자연수(natural number)를 몇 개의 공리(axiom)로 적고, 정사각형을 빈틈없이 메우는 연속 곡선과 ∈ 같은 논리 기호를 내놓아 수학 전체를 정확한 기호 언어로 다시 쓰려 한 이탈리아의 수학자.
주세페 페아노는 1858년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 쿠네오 근처의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해 뒤 이탈리아가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었고, 피에몬테의 도시 토리노는 그 첫 수도였습니다. 토리노에서 사제로 일하던 외삼촌이 똑똑한 조카를 데려가 공부시켰고, 그는 1876년 토리노 대학에 들어가 평생 그 대학에 머물렀습니다. 그 무렵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은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가 극한(limit)과 연속성(continuity)을 부등식으로 정의하면서 엄밀해졌다고 여겨졌지만, 교과서마다 여전히 말로 얼버무린 증명과 틀린 '정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한편 칸토어의 무한 집합(set)은 직관이 믿을 만한 길잡이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페아노는 평생 이 문제, 곧 수학을 오해의 여지가 없는 언어로 적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나이
그의 출발은 반례를 찾는 눈이었습니다. 1884년 그는 스승 안젤로 제노키의 미적분(calculus) 강의를 정리해 책으로 냈는데, 덧붙인 주석에서 당시 널리 쓰이던 정리들의 빈틈을 하나하나 짚었습니다. 1882년 무렵 강의를 하다가 그는 독일의 헤르만 슈바르츠와 따로, 곡면의 넓이(area)를 정의하는 흔한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곡선의 길이는 곡선 위에 점을 찍고 이은 꺾은선의 길이로 잴 수 있으니, 곡면의 넓이도 곡면 위에 꼭짓점(vertex)을 둔 작은 삼각형들의 넓이를 더해 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기둥 위에 삼각형을 주름지게 배치하면, 삼각형들이 모두 원기둥에 한없이 가까워지는데도 넓이의 합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습니다. 삼각형이 '가까워진다'는 것이 위치만 가까워진다는 뜻인지 기울기(slope)까지 가까워진다는 뜻인지를 정해 두지 않으면 정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1886년에는 미분방정식(differential equation)
1888년에는 독일의 헤르만 그라스만이 40여 년 전에 쓴 난해한 책을 풀어 쓰면서, 오늘날 벡터 공간(vector space)이라 부르는 것을 처음으로 공리로 정의했습니다. 더할 수 있고 수를 곱할 수 있으며 그 연산이 몇 가지 규칙(더하는 순서를 바꿔도 같다, 0이 있다, 분배 법칙이 성립한다 등)을 지키는 대상의 모음이면, 그것이 화살표든 다항식(polynomial)이든 함수든 모두 같은 이론으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벡터(vector), 선형 변환). 같은 책에서 그는 집합의 합과 교집합(intersection)에 ∪와 ∩ 기호를 썼습니다. 이 공리적 정의는 한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하다가 1920년대 바나흐 등의 함수 공간 이론에서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1889년의 작은 라틴어 책 『산술의 원리, 새로운 방법으로 설명함』은 자연수를 몇 가지 원시 개념, 곧 '수', '0', '다음 수'(뒤따름수)와 공리 몇 개로 세웠습니다. 0은 수이다. 모든 수에는 다음 수가 있다. 0은 어떤 수의 다음 수도 아니다. 다음 수가 같은 두 수는 같다. 그리고 0을 포함하고, 어떤 수를 포함하면 그 다음 수도 포함하는 집합 K는 모든 자연수를 포함한다. 마지막 공리가 수학적 귀납법(mathematical induction)입니다. 이것이 왜 필요한지는 예로 보면 분명합니다. 0, 1, 2, …에 따로 떨어진 사슬 ½, 1½, 2½, …를 덧붙여도 앞의 네 공리는 모두 지켜집니다. 귀납법 공리가 바로 이런 '끼어든 수'를 쫓아내어, 0에서 한 걸음씩 가서 닿는 것만이 자연수가 되게 합니다. 덧셈은
1890년의 네 쪽짜리 논문은 수학자들의 직관을 뒤흔들었습니다. 칸토어는 1878년 선분 위의 점과 정사각형 위의 점을 하나씩 짝지을 수 있음을 보였고(전단사(bijective), 기수(cardinal number)), 이듬해 오이겐 네토는 그런 짝짓기가 연속일 수는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페아노는 그 사이의 틈을 찔렀습니다. 짝짓기를 포기하는 대신, 선분 [0, 1]을 연속으로 움직이면서 정사각형의 모든 점을 적어도 한 번씩 지나가는 곡선을 만든 것입니다. 정사각형을 3×3의 작은 정사각형 아홉 개로 나누어 뱀처럼 차례로 지나가게 하고, 각 작은 정사각형 안에서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과정을 한없이 이어 가면 그 극한이 곡선이 됩니다. 이듬해 힐베르트는 정사각형을 넷씩 나누는 더 간단한 그림으로 같은 곡선을 만들었습니다. '곡선은 1차원'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자, 차원을 연속성만으로 정의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생겼고, 이 물음은 1911년 브라우어르의 차원 불변성(invariance of dimension) 정리와 위상수학(topology)으로 이어졌습니다(무한을 다루는 법).
1891년 그는 학술지 『수학 평론』을 창간했고, 이듬해부터 알려진 수학 정리를 모두 기호로 적어 모으는 『수학 공식집』 계획을 시작했습니다. 1895년부터 1908년까지 다섯 판이 나왔고 마지막 판에는 4천 개가 넘는 공식이 실렸습니다. 이 작업에서 오늘날의 기호 몇 개가 태어났습니다. '~이다'라는 그리스어 낱말의 첫 글자에서 따온 원소 기호 ∈, 거꾸로 쓴 E로 '존재한다'를 나타내는 ∃가 그의 것입니다. 체사레 부랄리포르티, 알레산드로 파도아, 마리오 피에리 같은 조수와 제자들이 모여 '페아노 학파'를 이루었고, 부랄리포르티는 1897년 모든 서수(ordinal)의 모임을 생각하면 모순이 생긴다는 역설을 발표해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보다 먼저 집합론(set theory)의 균열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기호로 가득 찬 그의 강의는 학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습니다.
1900년 8월 파리의 국제철학대회는 그의 기호가 세계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회에 온 영국의 젊은 러셀은 토론에서 페아노와 그 제자들이 누구보다 정확하다는 데 놀랐고, 뒷날 이 대회를 자기 지적 생애의 전환점으로 회고했습니다. 러셀은 그의 저작을 모두 구해 몇 주 만에 표기법을 익혔고, 화이트헤드와 함께 쓴 『수학 원리』의 기호는 상당 부분 페아노에게서 왔습니다(20세기 초 케임브리지). 독일 예나의 프레게와는 1890년대에 서로의 논리 기호를 비평하는 글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페아노가 수학을 적기 위한 실용적인 속기를 원했다면, 프레게는 추론의 모든 단계를 드러내는 완전한 논리 언어를 원했다는 점이 둘의 차이였습니다(수학 기초론 논쟁, debate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그 뒤 그의 관심은 수학의 언어에서 사람의 언어로 옮겨 갔습니다. 과학자들이 저마다 자기 나라 말로 쓰면서 서로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한 그는 1903년, 라틴어에서 어미 변화를 모두 없애고 여러 유럽어에 공통으로 남은 낱말을 골라 쓰는 '굴절 없는 라틴어'를 제안했고, 1908년부터 국제어 학회를 이끌었습니다. 『수학 공식집』의 마지막 판도 이 언어로 썼는데, 그 탓에 오히려 읽는 사람이 줄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1932년 토리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국제어는 잊혔지만, 그의 공리는 자연수의 표준 정의로, 그의 기호는 모든 논리학 교과서에 남았습니다. 정사각형을 메우는 곡선도 살아남아서, 오늘날 힐베르트 곡선은 2차원 자료를 1차원 순서로 늘어놓으면서 가까운 점을 가까이 두어야 하는 데이터베이스와 영상 처리에 쓰입니다.
이어지는 곳. 자연수를 세우는 공리는 공리와 공준(axioms and postulates), 수학적 귀납법, 수 체계에서, 그 체계의 한계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s)에서 이어집니다. 선분과 정사각형의 점 세기는 기수와 전단사에서, 차원의 물음은 브라우어르와 위상수학에서, 넓이를 재는 방법은 르베그와 르베그 적분과 측도에서 이어집니다.
관계.
- 영향을 받음 리하르트 데데킨트 — 데데킨트가 1888년 『수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서 자연수를 먼저 비슷한 조건으로 규정했고, 그는 이듬해 『산술의 원리』 머리말에서 그 책이 쓸모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 영향을 받음 게오르크 칸토어 — 칸토어가 선분과 정사각형의 점이 같은 개수임을 보인 뒤, 그 대응을 연속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물음에 1890년 정사각형을 메우는 곡선으로 답했습니다.
- 편지 고틀로프 프레게 — 1890년대에 서로의 기호 논리(symbolic logic)를 비평하는 글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누구의 표기가 더 정확한지 겨루었습니다.
- 영향을 줌 다비트 힐베르트 — 1891년 힐베르트는 그의 곡선을 정사각형을 넷씩 나누어 가는 그림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 영향을 줌 버트런드 러셀 — 1900년 파리에서 그의 기호 논리를 본 러셀은 곧 그 표기를 익혀 『수학 원리』의 언어로 삼았습니다.
연표.
- 1876년 토리노 대학에 들어가다
- 1884년 스승 제노키의 미적분 강의록을 자기 주석을 붙여 펴내다
- 1886년 함수가 연속이기만 하면 미분방정식의 해가 있음을 보이다
- 1888년 그라스만의 책을 풀어 쓰며 벡터 공간을 처음 공리로 정의하다
- 1889년 『산술의 원리』에서 자연수의 공리를 라틴어로 발표하다
- 1890년 정사각형을 빈틈없이 메우는 연속 곡선을 발표하다
- 1891년 학술지 『수학 평론』을 창간하다
- 1895년 『수학 공식집』 첫 판을 내다
- 1900년 파리 국제철학대회에서 러셀을 만나다
- 1903년 굴절 없는 라틴어를 국제어로 제안하다
- 1908년 『수학 공식집』 마지막 판을 굴절 없는 라틴어로 펴내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이 인물을 언급하는 페이지
-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 '다음 수', 덧셈, 곱셈에 관한 몇 가지 공리와 수학적 귀납법으로 자연수를 다루는 페아노 산술입니다(주세페 페아노의 이름을 땄습니다). 체계가 무모순 이라는 것은 어떤 문장과 그 부정을 함께 증명하는 일이 없다는 …
- 수학적 귀납법
… 개수 n!, 카탈랑 수의 점화식이 모두 귀납법으로 증명됩니다. 1889년 이탈리아의 수학자페아노는 '1은 자연수다', '모든 자연수에는 바로 다음 수가 있다' 같은 몇 개의 공리로 자연수를 …
- 수 체계: 자연수에서 실수까지
… 대신 옛 성질 하나를 잃습니다. 그러면 맨 처음의 자연수는 무엇일까요? 1888년 데데킨트와 1889년페아노는 자연수를 '다음 수'와 수학적 귀납법에 관한 몇 개의 공리로 정했고, 20세기에는 자연수마저 …
- 공리와 공준
… 수 있지만, 무한한 대상을 다루는 공리계는 그렇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수에도 공리가 있습니다. 1889년페아노는 한 해 앞선 데데킨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연수를 이렇게 정했습니다(페아노는 1에서 시작했지만 …
- 수학 기초론 논쟁
… 처치–튜링 논제). 같은 해 독일의 게르하르트 겐첸은 유한한 방법보다 조금 강한 초한 귀납법을 쓰면페아노산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있음을 보여 힐베르트의 계획을 일부 살렸습니다. 직관주의의 '지어 보여야 …
- 의존 타입
… 원소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증명이 됩니다. 귀납법은 되부름이다. 자연수를 0과 succ(다음 수)로 짓고(페아노의 방식), 덧셈을 첫째 인자에 대한 되부름으로 정의합니다: 0 + m = 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