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집합론(Set theory)

기술 집합론(Descriptive set theory)

실수⁠(real number)⁠의 집합⁠(set)⁠ 가운데 구간에서 출발해 셀 수 있는 번의 합집합⁠(union)⁠·여집합⁠(complement)⁠·그림자(사영)로 '적어 낼 수 있는' 것들을 층층이 분류하고, 그 층마다 측도⁠(measure)⁠와 크기 같은 좋은 성질이 어디까지 성립하는지 묻는 분야.

보렐⊊Σ11={ π(B):B⊆R2 보렐 },π(B)={ x:∃y (x,y)∈B }\text{보렐} \subsetneq \boldsymbol{\Sigma}^1_1 = \{\, \pi(B) : B \subseteq \mathbb{R}^2 \text{ 보렐} \,\}, \qquad \pi(B) = \{\, x : \exists y\ (x, y) \in B \,\}
먼저 보면 좋은 개념집합집합의 연산가산 집합

칸토어의 집합론에 따르면 실수의 부분집합⁠(subset)⁠은 멱집합⁠(power set)⁠의 크기만큼, 곧 실수보다도 많습니다. 그런데 유한한 글자로 적을 수 있는 규칙은 셀 수 있을 만큼뿐이니, 그 대부분은 어떤 규칙으로도 적어 보일 수 없는 이름 없는 집합입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의 에밀 보렐, 르네 베르, 앙리 르베그는 반대쪽에서 물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이런 점들의 모임'이라고 적어 낼 수 있는 집합은 어떤 것들이고, 그런 집합에서는 길이(측도)나 크기에 관한 물음에 답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을 다루는 분야가 기술 집합론입니다. '기술(記述)'은 적어서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열린 집합⁠(open set)⁠과 닫힌 집합⁠(closed set)⁠. 출발점은 구간입니다. 실수의 집합 U가 열린 집합이라는 것은, U의 어느 점에서나 양옆으로 조금은 움직여도 U 안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정확히는 U의 각 점 x마다 어떤 r > 0이 있어서 구간 (x − r, x + r)가 통째로 U에 들어 있습니다. (0, 1)은 열린 집합입니다. 0.999에서도 0.0005만큼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0, 1]은 아닙니다. 끝점 1에서는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도 밖입니다. 여집합이 열린 집합인 집합을 닫힌 집합이라 하는데, 이것은 '집합의 점들이 어느 한 곳으로 모여들면 그 모이는 곳도 집합 안에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0, 1]과 칸토어 집합⁠(Cantor set)⁠이 닫힌 집합입니다. 유리수⁠(rational number)⁠ 전체는 둘 다 아닙니다. 모든 열린 집합은 셀 수 있는 개수의 열린 구간의 합집합이라서, 열린 집합과 닫힌 집합은 구간들의 목록 하나로 적어 낼 수 있습니다.

보렐 집합⁠(Borel set)⁠: 셀 수 있는 번의 조작. 1898년 보렐은 열린 구간에서 출발해 여집합을 취하고 셀 수 있는 개수의 집합을 합치는 일을 되풀이해 얻는 집합들을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보렐 집합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층으로 세면 이렇습니다. 열린 집합(Σ⁰₁)과 닫힌 집합(Π⁰₁)이 맨 아래 층입니다. 닫힌 집합을 셀 수 있는 개수만큼 합친 것이 Fσ(Σ⁰₂), 열린 집합을 셀 수 있는 개수만큼 겹친(교집합⁠, intersection⁠) 것이 Gδ(Π⁰₂)입니다. 유리수 전체는 한 점짜리 닫힌 집합들을 셀 수 있는 번 합친 것이니 Fσ이고, 무리수⁠(irrational number)⁠ 전체는 'q1q_1이 아니고, q2q_2가 아니고, …'인 점들, 곧 열린 집합 R∖{qn}\mathbb{R} \setminus \{q_n\}들의 교집합이니 Gδ입니다.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정말로 새 집합이 생긴다는 것은 1905년 르베그가 증명했고, 층은 유한 번에서 끝나지 않고 셀 수 있는 모든 단계(서수⁠, ordinal⁠)를 거쳐 이어집니다. 예를 골라 층에서 자리를 찾아보세요: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적어 내는 데 조작이 더 필요한 집합들입니다. 선은 '아래 칸의 집합은 모두 위 칸에도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노랗게 빛나는 칸이 고른 집합이 처음 들어가는 층입니다.

집합을 적어 내는 조작과 논리의 말은 짝을 이룹니다. '모든 k에 대해'는 교집합, '어떤 N이 있어서'는 합집합, '아니다'는 여집합입니다. 그래서 정의에 나오는 '모든'과 '어떤'이 몇 겹인지를 세면 집합이 몇 층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연속함수열이 수렴⁠(convergence)⁠하는 점들의 집합이 Π⁰₃에 있다는 것이 그 예입니다(점별 수렴과 균등 수렴⁠(pointwise and uniform convergence)⁠). 보렐 집합은 모두 르베그 측도⁠(Lebesgue measure)⁠를 가지고, 1916년 루진 세미나의 학생 파벨 알렉산드로프와 독일의 펠릭스 하우스도르프는 각각 셀 수 없는 보렐 집합에는 칸토어 집합을 닮은 부분(완전 집합⁠, perfect set⁠)이 들어 있어 크기가 반드시 실수 전체와 같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보렐 집합에 한해서는 연속체 가설⁠(continuum hypothesis)⁠이 참인 것입니다.

그림자 하나가 만든 분야. 평면의 집합 B가 있을 때, 위에서 빛을 비춰 가로축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B의 사영이라 합니다. 점 x가 그림자 안에 있다는 것은 '(x, y)가 B에 들어가는 y가 어떤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은 곧 논리의 '어떤 y가 존재한다'입니다. 집합 에서 세로선 x=x = 을 움직여 보세요.

흰검은 곡선이나 영역이 평면의 집합 B, 주황 굵은 선이 가로축에 드리운 그림자입니다. 노란 세로선이 B와 만나는 점이 '존재하는 y'입니다. 축 위의 점을 끌어 보세요.

세 집합 모두 평면의 닫힌 집합입니다. 그런데 쌍곡선⁠(hyperbola)⁠의 그림자 {x:x≠0}\{x : x \ne 0\}은 닫힌 집합이 아닙니다. 0에 한없이 가까운 x들은 그림자 안에 있는데 0은 빠져 있습니다. 가지가 위아래로 한없이 달아나면서 0 위에는 끝내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를 드리우면 집합이 한 층 복잡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닫힌 집합의 그림자는 그래도 Fσ에 머물지만(평면을 유계인 조각으로 나누면 조각마다 그림자가 닫힌 집합입니다), 보렐 집합 일반의 그림자는 어떨까요?

르베그는 1905년 논문에서 보렐 집합의 그림자는 늘 보렐 집합이라고 적었습니다. 1916년 무렵 모스크바에서 니콜라이 루진의 세미나에 있던 학생 미하일 수슬린이 이 논문을 읽다가 증명의 잘못을 찾아냈습니다. 르베그는 점점 줄어드는 집합들을 셀 수 있는 번 겹칠 때 겹친 것의 그림자가 그림자들을 겹친 것과 같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로 반직선 Bn={(0,y):y≥n}B_n = \{(0, y) : y \ge n\}은 n이 커질수록 줄어들고 모두에 공통으로 든 점이 없어서 교집합의 그림자는 비어 있지만, 그림자는 하나하나가 모두 {0}이라 그림자들의 교집합은 {0}입니다. 수슬린은 보렐 집합의 그림자들을 새로운 부류로 보고 해석적 집합(Σ¹₁)이라 불렀으며, 1917년 보렐 집합이 아닌 해석적 집합⁠(analytic set)⁠이 있다는 것과 함께 결정적인 정리를 발표했습니다. 수슬린 정리: 어떤 집합이 보렐 집합인 것은 그 집합과 여집합이 모두 해석적 집합인 것과 같습니다. 루진은 같은 호의 『콩트 랑뒤』에 해석적 집합의 성질을 함께 실었고, 뒤에 연분수⁠(continued fraction)⁠ 전개의 항들 가운데 각 항이 다음 항을 나누는 무한 부분열을 고를 수 있는 무리수들의 집합이라는, 해석적이지만 보렐이 아닌 구체적인 예를 들었습니다(연분수). 수슬린은 내전 중이던 1919년 발진티푸스로 스물넷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해석적 집합도 여전히 순하게 행동합니다. 루진과 수슬린은 해석적 집합이 모두 르베그 측도를 가지고, 셀 수 없으면 크기가 실수 전체와 같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틀린 증명 하나가 새 분야를 연 셈입니다. 르베그는 1930년에 나온 루진의 책 『해석적 집합 강의』에 서문을 써서, 이 이론의 출발점이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사영 집합⁠(projective set)⁠과 답할 수 없는 물음. 1925년 루진과 폴란드의 바츠와프 시에르핀스키는 여집합과 그림자를 번갈아 취해 사다리를 계속 올라갔습니다. 해석적 집합의 여집합(여해석적, Π¹₁), 그것의 그림자(Σ¹₂), 또 그것의 여집합(Π¹₂), …. 이것들을 모두 사영 집합이라 합니다. '어떤 실수 y가 있어서, 모든 실수 z에 대해, …'처럼 실수를 두고 '어떤'과 '모든'을 번갈아 붙인 식으로 정의되는 집합이 바로 이것들입니다. 그런데 한 층만 올라가도 물음에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셀 수 없는 Π¹₁ 집합은 크기가 실수 전체와 같은가? Σ¹₂ 집합은 모두 측도를 가지는가? 루진은 1925년 이런 물음에 대해 '우리는 모르며,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는 뜻의 말을 남겼습니다.

그 예언은 뜻밖의 방식으로 맞았습니다. 1938년 괴델은 집합론⁠(set theory)⁠의 공리(ZFC)와 모순 없이 측도를 갖지 않는 Σ¹₂ 집합이 있을 수 있음을 보였고, 1970년 미국의 로버트 솔로베이는 (도달 불가능한 기수⁠(cardinal number)⁠라는 큰 무한이 있다고 가정하면) 사영 집합이 모두 측도를 가지는 것도 공리와 모순이 없음을 보였습니다. 이 물음들은 (ZFC에 모순이 없다면) ZFC만으로는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s)⁠처럼 공리 체계의 한계를 보여 주지만, 이 경우는 공리를 모두 만족하는 모형을 직접 지어 보이는 방법으로 얻었습니다(수학 기초론 논쟁⁠, debate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1980년대 말 도널드 마틴, 존 스틸, 휴 우딘 등은 아주 큰 무한(큰 기수⁠, large cardinal⁠)이 있다고 가정하면 모든 사영 집합이 측도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오늘날 기술 집합론은 이런 큰 무한의 가정들을 서로 견주는 잣대이면서, 동역학계⁠(dynamical system)⁠와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에서 '이 분류 문제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재는 도구로도 쓰입니다.

이어지는 곳. 이 분야의 뿌리는 삼각급수⁠(trigonometric series)⁠와 푸리에 급수⁠(Fourier series)⁠가 어디서 수렴하는가라는 물음이었고, 칸토어가 무한 집합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삼각급수가 함수⁠(function)⁠를 하나로 정하는지를 묻다가였습니다(가산 집합⁠(countable set)⁠, 대각선 논법⁠(diagonal argument)⁠). 측도에 대해서는 르베그 적분과 측도⁠(Lebesgue integral and measure)⁠와 측도 0⁠(measure zero)⁠을, 그 무대였던 세미나에 대해서는 모스크바 수학 학파와 드미트리 예고로프를 보세요. 열린 집합의 개념을 실수 너머로 넓힌 것이 위상수학⁠(topology)⁠입니다. 논리의 '어떤'과 '모든'이 집합의 층이 되는 모습은 튜링 기계⁠(Turing machine)⁠와 정지 문제⁠(halting problem)⁠에서 계산 가능성⁠(computability)⁠의 층을 세는 방식과도 닮았으며, 둘 다 자기 참조⁠(self-reference)⁠와 대각선과 무한을 다루는 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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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론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 자연수와 짝수는 어느 쪽이 많을까? 칸토어는 무한을 세는 법을 찾았고, 무한이 하나가 아님을 보였다. 게임과 증명 이기는 쪽이 존재한다 "이 판은 백이 이겼다"는 흑이 어떻게 두든 백에게 답이 있다는 말이다. 체스의 체르멜로 정리, ε–δ, 님의 이진법, 폰 노이만의 최소최대와 쌍대성, 논리의 한계를 재는 게임, 끝나지 않는 게임과 선택공리, 대화로 읽는 증명, 겨루며 배우는 신경망까지. 수학의 참을 두 사람의 게임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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