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니(Pāṇini)
산스크리트를 약 4,000개의 짧은 규칙으로 적은 문법 『아슈타디야이』를 남긴 고대 인도의 문법학자로, 어근과 접사에 규칙을 차례로 적용해 올바른 말을 만들어 내는 그 체계는 오늘날 형식 문법의 선구로 꼽힌다.
파니니는 고대 인도의 문법학자입니다. 전승은 그가 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간다라 지방의 샬라투라 출신이라고 전합니다. 언제 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서 대개 기원전 5–4세기로 보고, 더 이르게 잡는 학자도 있습니다. 위 연표의 막대는 그 가운데 흔히 쓰는 추정 하나를 편의상 그린 것일 뿐입니다. 그 시대 인도에서 베다(고대 인도의 가장 오래된 종교 찬가와 제의 문헌)의 찬가는 글자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한 음절도 틀리지 않게 전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음성학, 운율학(prosody), 어원학과 함께 문법은 베다를 지키는 보조 학문이었습니다. 파니니는 그 문법학의 전통 위에서 산스크리트 전체를 규칙으로 적는 일을 가장 멀리까지 밀고 갔습니다.
나이
제국의 변경. 파니니의 고향 간다라는 기원전 6세기 말부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의 속주였습니다. 다리우스 1세의 베히스툰 비문에도 제국의 땅 가운데 하나로 간다라가 적혀 있습니다. 제국의 행정 문자였던 아람 문자에서 이 지방의 카로슈티 문자가 나왔고, 가까운 탁실라는 뒷날 여러 지역의 학생이 모이는 학문 도시로 이름났습니다. 『아슈타디야이』에는 '야바나'(이오니아, 곧 그리스)라는 말에서 여성형을 만드는 규칙(4.1.49)이 있는데, 뒷날의 주석가 카티야야나는 이것을 '그리스 문자'라는 뜻으로 풀었습니다. 글쓰기를 뜻하는 '리피'라는 말도 나옵니다. 그래서 파니니가 페르시아 제국을 통해 그리스 세계와 문자 문화에 닿아 있었다고 보고 이 낱말들을 연대 추정의 근거로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 문법을 글로 썼는지, 처음부터 입으로 짓고 외워 전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앞선 사람들. 파니니는 빈 땅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샤칼랴, 가르갸, 샤카타야나 등 열 명의 앞선 문법학자를 이름으로 인용하며 어떤 형태에 대해 그들의 의견이 다르다고 적었습니다. 샤칼랴는 『리그베다』의 찬가를 낱말 단위로 끊어 외우는 방식(파다파타)을 만든 사람으로 전하는데, 이어 읊으면 소리가 바뀌는 낱말들을 떼어 놓는 이 작업 자체가 소리 바뀜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어원학자 야스카의 『니룩타』도 대개 파니니보다 앞선 것으로 봅니다. 파니니가 한 일은 이 전통의 관찰들을 하나의 생성 장치로 압축한 것이고, 그 결과가 너무 완결되어서 앞선 문법서들은 거의 모두 사라졌습니다. 유클리드의 『원론』이 나온 뒤 앞선 원론들이 사라진 것과 닮은 운명입니다.
그가 남긴 『아슈타디야이』('여덟 장')는 약 4,000개의 짧은 규칙(수트라)으로 된 문법입니다. 이 문법은 '이 낱말은 이렇게 쓴다'는 목록이 아닙니다. 어근 목록과 접사에서 출발해 규칙을 차례로 적용하면 올바른 낱말과 문장이 만들어져 나오는 생성 장치입니다. 약 2,000개의 동사 어근을 모은 목록과, 같은 규칙을 따르는 낱말들을 묶은 목록이 규칙집과 짝을 이룹니다. 외우기 좋게 극도로 압축되어 있어서, 앞 규칙에 나온 낱말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뒤의 규칙들에 이어서 적용된다는 약속(아누브리티)이 있습니다. 여러 식에 공통인 인수를 괄호 밖으로 묶어 내는 것과 같은 압축입니다.
문법 앞에 붙은 '시바 수트라'는 산스크리트의 소리를 14줄로 늘어놓고 줄마다 끝에 표지 글자를 붙였습니다. 그러면 첫 소리와 표지 글자 하나만으로 소리의 무리를 부를 수 있습니다. ac는 '모든 모음', hal은 '모든 자음', ik는 'i, u, ṛ, ḷ'입니다. 오늘날의 정규 표현식(regular expression)에서 [a-z]로 글자의 범위를 적는 것과 같은 발상입니다. 14줄의 순서 자체가, 규칙들이 부르는 소리의 무리가 거의 모두 연속된 구간이 되도록 짜여 있습니다.
규칙을 적는 방식도 정교합니다. 파니니는 산스크리트의 격 어미로 규칙의 문법을 만들었습니다. 속격('~의')으로 적은 것은 바뀌는 소리, 주격('~이/가')은 바뀐 결과, 탈격('~로부터')은 바로 앞의 환경, 처격('~에서')은 바로 뒤의 환경입니다. 그래서 규칙 하나는 "앞이 A이고 뒤가 B일 때 X를 Y로 바꾼다"는 뜻이 되고, 20세기 언어학의 표기로 쓰면
보이지 않는 단계와 영. 규칙이 4,000개나 되면 어떤 순서로 적용하는지가 문제입니다. 규칙 8.2.1은 책의 마지막 세 절(8장의 둘째부터 넷째 절)에 있는 규칙들이 그 앞의 규칙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정합니다. 앞 단계가 모두 끝난 뒤에야 뒤 단계가 돌아가는 파이프라인과 같은 구조로, 뒤 단계에서 바뀐 소리가 앞 단계의 규칙을 다시 건드리지 못하게 막습니다. 또 파니니는 어떤 요소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로파)을 하나의 대치로 정의해, 아무것도 없는 것이 규칙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했습니다. 이 문법의 '영'이 뒷날 인도 수학의 0과 이어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없는 추측입니다.
그의 문법은 기원전 3세기 무렵 카티야야나의 보충 규칙과 기원전 2세기 파탄잘리의 방대한 주석 『마하바샤』를 거치며 인도 문법학의 정전이 되었습니다. 5세기의 바르트리하리는 이 전통 위에서 말과 의미의 철학을 세웠고, 17세기의 바토지 딕시타는 규칙들을 주제별로 다시 배열한 『싯단타 카우무디』를 지어 전통 교육에서 오늘날까지 쓰이게 했습니다. 전승은 운율학자 핑갈라를 파니니의 동생이라고 전하지만 근거는 약합니다. 핑갈라의 운율학은 짧은 음절과 긴 음절의 무늬를 빠짐없이 늘어놓다가 이진수와 같은 구조의 목록에 이르렀고, 10세기의 주석가 할라유다는 그 무늬를 세는 표를 파스칼의 삼각형(Pascal's triangle)과 같은 수 배열로 그렸습니다. 규칙으로 말을 만드는 파니니와 무늬를 세는 핑갈라는 같은 베다 전통의 두 얼굴입니다.
유럽에 닿다. 1786년 캘커타의 판사 윌리엄 존스가 산스크리트와 그리스어, 라틴어가 한 뿌리에서 나왔으리라는 강연을 한 뒤, 유럽의 학자들은 산스크리트를 배우기 시작했고 산스크리트와 유럽 언어들의 친족 관계를 따지는 비교 언어학(comparative linguistics)이 자랐습니다. 1839–40년 독일의 오토 뵈틀링크가 『아슈타디야이』를 유럽에서 처음 펴냈고, 근대 언어학의 기초(basics)를 놓은 제네바의 소쉬르도 산스크리트 문법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20세기 미국 구조주의(structuralism) 언어학을 이끈 블룸필드는 파니니의 문법을 인간 지성의 가장 위대한 기념비 가운데 하나라고 불렀습니다.
1959–60년 프로그래밍 언어 ALGOL의 문법을 적으려고, 포트란을 만든 미국의 존 배커스와 덴마크의 페테르 나우르가 다듬은 표기가 '배커스–나우르 형식'(BNF)입니다. <수> ::= <숫자> | <숫자><수>처럼 '이것은 저것들로 이루어진다'는 규칙을 적고 되풀이해 적용하는 이 표기는 파니니와 거의 같은 일을 하고, 1967년 피터 잉거먼은 이것을 '파니니–배커스 형식'이라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다만 '산스크리트가 컴퓨터에 가장 알맞은 언어'라는 식의 대중적인 주장은 과장입니다. 파니니의 업적은 특정 언어가 특별하다는 데 있지 않고, 한 언어를 유한한 규칙의 체계로 거의 빠짐없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진 가장 이른 시기에 가장 완결된 형태로 보여 준 데 있습니다.
이어지는 곳. 유한한 규칙으로 무한한 문장을 만든다는 생각(무한을 다루는 법)은 촘스키의 생성 문법으로 되살아났고, 규칙의 모양에 따라 문법의 힘을 층으로 나눈 촘스키 위계와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적는 문맥 자유 문법으로 이어집니다. 소리의 무리를 짧게 부르는 시바 수트라의 표기는 글자의 무늬를 적는 정규 표현식에서, 그 무늬를 알아보는 가장 단순한 기계인 유한 오토마톤(finite automaton)에서 다시 만납니다. 규칙 대신 빈도로 언어를 보는 반대편의 전통은 알킨디와 마르코프에서 시작해 n-그램(n-gram)으로 이어집니다.
연표.
- 기원전 350년 『아슈타디야이』를 짓다(연대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