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카르나프(Rudolf Carnap)
빈 학파의 중심에서 과학의 언어를 논리로 다시 짜려 했고, 『언어의 논리적 구문』에서 범주론(category theory)이 빌려 간 낱말 '함자(functor)'를 썼으며, 문장에 확률(probability)을 매기는 귀납 논리와 바르힐렐과 함께한 의미 정보 이론을 세운 독일 출신의 철학자.
루돌프 카르나프는 1891년 독일 서부 론스도르프(오늘날 부퍼탈)에서 태어났습니다. 1910년부터 1914년까지 예나 대학에서 철학과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고, 그곳에서 프레게의 논리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는 학생이 몇 명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전선에 나가 1917년까지 싸웠습니다. 그가 평생 붙든 물음은, 과학이 하는 말 가운데 무엇이 뜻이 있고 무엇이 뜻이 없는지를 논리로 가를 수 있는가였습니다.
나이
1921년 그는 공간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수학자의 공간, 눈으로 그리는 공간, 물리학자가 재는 공간을 구별하자는 논문이었습니다. 1928년의 『세계의 논리적 구성』에서는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논리를 도구로, 과학의 모든 개념을 가장 기본적인 경험들에서 차례로 쌓아 올리려 했습니다.
빈 학파. 1926년 그는 빈 대학으로 옮겨 철학자 모리츠 슐리크가 이끈 목요일 모임, 곧 빈 학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함께 읽으며, 문장이 뜻을 가지려면 관찰로 확인할 수 있거나 논리만으로 참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관찰로 가릴 수 없는 형이상학의 물음들은 참도 거짓도 아닌 '뜻 없는' 문장입니다. 1932년 카르나프는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한 형이상학의 극복」에서 하이데거의 문장을 예로 들어 이를 주장했습니다. 이 생각은 논리 실증주의라 불렸는데, 현상의 법칙만 찾자던 19세기 콩트의 실증주의에 현대 논리학을 더한 것입니다. 1928년 빈에서 그가 한 논리학 강의는 젊은 괴델을 수리 논리학(mathematical logic)으로 이끈 계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언어의 문법과 '함자'. 1931년 프라하 독일 대학으로 옮긴 그는 1934년 『언어의 논리적 구문』을 펴냈습니다. 언어를 기호들의 줄과 그 줄을 바꾸는 규칙들의 체계로 다루는 책입니다. 여기서 그는 '관용의 원리'를 내세웠습니다. 어느 논리가 유일하게 옳은지 다투지 말고, 저마다 원하는 언어를 규칙만 분명히 하여 세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논리에는 도덕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어느 자리의 온도'처럼 대상에 수를 대응시키는 기호를 '함자'라 불렀습니다. 1945년 에일렌베르크와 매클레인이 범주론을 세울 때, 매클레인의 회고에 따르면 '범주(category)'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에게서, '함자'는 카르나프에게서 빌린 말입니다. 매클레인은 이 책의 영어판(1937)을 서평한 일이 있었습니다(함자, 범주론).
시카고와 확률. 나치가 권력을 잡자 그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1936년부터 1952년까지 시카고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이때 그는 '확률'이라는 말에 두 뜻이 섞여 있다고 보았습니다. 동전을 많이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오는 비율이라는 뜻과, 증거가 어떤 가설을 얼마나 뒷받침하는가라는 뜻입니다. 그는 뒤의 것을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적 관계로 보고 계산하는 귀납 논리를 세웠고, 1950년 『확률의 논리적 기초(basics)』로 펴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기본 문장으로 삼느냐에 따라 확률이 달라지는 문제를 끝내 풀지 못했습니다. 시카고에서 이 시도를 배운 솔로모노프는 기본 단위를 문장 대신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보편 예측으로 나아갔습니다. 시카고 캠퍼스를 떠돌던 소년 월터 피츠가 그의 책의 문제점을 적은 노트를 들고 찾아오자, 그는 이 소년에게 대학의 일자리를 구해 주었다는 일화도 전합니다.
의미 정보. 섀넌의 정보 이론은 기호가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운지를 잴 뿐, 메시지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1952년 카르나프와 이스라엘의 논리학자 예호슈아 바르힐렐은 문장의 뜻이 담은 정보를 재려 했습니다.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만 따지는 작은 세계를 생각해 봅시다. 가능한 세계는 넷입니다. "비가 온다"는 넷 가운데 둘을 배제하니 내용은 cont = 1/2이고, 남는 세계의 몫 m = 1/2로 재면 정보는 inf = 1비트입니다(위의 식).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는 셋을 배제하니 cont = 3/4, inf = 2비트입니다. 많은 세계를 배제하는 문장일수록 정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자로 재면 모든 세계를 배제하는 모순된 문장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집니다. 오늘날 바르힐렐–카르나프의 역설이라 부르는 이 결과는, 뜻을 재는 일이 신호를 재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정보 엔트로피, information entropy).
1952년 그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로 옮겼고, 1954년부터는 UCLA에서 가르쳤습니다. 친구이자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였던 하버드의 콰인(quine)과는 논리만으로 참인 문장과 경험으로 참인 문장의 구별을 두고 오래 논쟁했습니다. 그는 1970년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곳. '함자'라는 낱말이 범주론에 들어온 이야기는 「화살표만으로 본 수학」에, 바르힐렐과 함께 잰 의미 정보와 그 역설은 「잡음 너머로」에, 그의 확률 논리에서 솔로모노프의 보편 예측으로 이어진 길은 「압축하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에 있습니다. 같은 시대 수학의 토대를 둘러싼 논쟁은 수학 기초론 논쟁(debate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계.
- 스승 고틀로프 프레게 — 1910–14년 예나에서 프레게의 논리학 강의를 들은 몇 안 되는 학생 가운데 하나였고, 『개념 표기법』을 다룬 강의도 들었습니다.
- 영향을 받음 버트런드 러셀 —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의 논리를 도구로, 과학의 모든 개념을 경험에서 쌓아 올리려 한 『세계의 논리적 구성』을 썼습니다.
- 영향을 받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빈 학파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함께 읽었고, 카르나프도 1927년 무렵 그를 만났습니다. 뜻 있는 문장의 경계를 긋는 일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 영향을 줌 쿠르트 괴델 — 1928년 빈에서 한 카르나프의 논리학 강의는 괴델을 수리 논리학으로 이끈 계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 영향을 줌 손더스 매클레인 — 매클레인의 회고에 따르면 범주론의 '함자'는 『언어의 논리적 구문』에서 빌린 말입니다. 매클레인은 이 책의 영어판을 서평했습니다.
- 영향을 줌 레이 솔로모노프 — 솔로모노프는 시카고에서 카르나프의 확률 논리를 배웠고, 문장 대신 프로그램을 기본 단위로 삼아 보편 예측으로 나아갔습니다.
- 영향을 줌 월터 피츠 — 1943년 피츠와 맥컬러의 뉴런 논문은 카르나프의 기호 논리(symbolic logic)를 언어로 삼았습니다. 카르나프는 연구실로 찾아온 소년 피츠에게 대학의 일자리를 구해 주었습니다.
연표.
- 1891년 독일 론스도르프(오늘날 부퍼탈)에서 태어나다
- 1910년 예나 대학에 들어가 프레게의 논리학 강의를 듣다(1914년까지)
-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나가 1917년까지 전선에서 싸우다
- 1921년 공간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예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다(이듬해 『공간』으로 출판)
- 1926년 빈 대학으로 옮겨 슐리크의 빈 학파에 들다
- 1928년 『세계의 논리적 구성』을 펴내다
- 1931년 프라하 독일 대학의 교수가 되다
- 1934년 『언어의 논리적 구문』을 펴내다
- 1935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다
- 1936년 시카고 대학 교수가 되다(1952년까지)
- 1950년 『확률의 논리적 기초』를 펴내다
- 1952년 바르힐렐과 「의미 정보 이론의 개요」를 내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로 옮기다
- 1954년 UCLA 교수가 되다
- 1970년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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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주론
… 했습니다. 매클레인의 회고에 따르면 '범주'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에게서, '함자'는 철학자루돌프 카르나프에게서 빌린 말입니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가 1957년 이른바 도호쿠 논문에서 호몰로지 대수를 범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