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지도
인물

알렉산더 그로텐디크(Alexander Grothendieck)

방정식의 해를 수 체계⁠(number system)⁠마다 모으는 함자⁠(functor)⁠로 도형을 다시 정의한 스킴 이론과, 공간의 개념을 넓힌 토포스⁠(topos)⁠로 대수 기하학을 새로 세우고, 1970년 연구 기관을 떠난 뒤 말년에 은둔한,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수학자.

X(R)={(x,y)∈R2:x2+y2=1}X(R) = \{ (x, y) \in R^2 : x^2 + y^2 = 1 \}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1928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러시아 출신의 무정부주의 운동가였고 어머니는 독일의 작가였습니다. 나치가 권력을 잡자 부모는 독일을 떠났고, 전쟁 중 아버지는 프랑스의 수용소를 거쳐 아우슈비츠에서 죽었습니다. 소년 그로텐디크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 남부의 수용소에 갇혔다가, 난민 아이들을 숨겨 준 르샹봉쉬르리뇽의 학교에서 전쟁을 넘겼습니다. 이런 출발에도 그는 20세기 후반 수학을 가장 크게 바꾼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굵은 막대가 이 사람의 생애이고, 흰검은 점은 페이지 끝 연표에 적은 일들입니다. 가는 막대는 같은 시대를 산 이 위키의 인물들입니다. 나이를 끌어 보세요.

나이 세 ·

몽펠리에 대학을 나온 그는 파리를 거쳐 1949년 낭시에서 로랑 슈바르츠와 장 디외도네에게 배웠습니다. 두 스승이 풀지 못한 문제 목록을 건네자 그는 몇 달 만에 대부분을 풀었다고 전합니다. 1953년 무한 차원 함수⁠(function)⁠ 공간의 텐서곱⁠(tensor product)⁠에 관한 박사 논문은 함수 해석학⁠(mathematical analysis)⁠의 한 분야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대수 기하학으로 옮겨 갔고, 1957년 두 편의 결과로 그 분야의 판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일본 학술지 『도호쿠 수학 저널』에 실린 긴 논문으로, 에일렌베르크와 카르탕이 가군에서 세운 호몰로지 대수를 '아벨 범주⁠(abelian category)⁠'라는 넓은 틀로 옮겨, 층의 코호몰로지⁠(cohomology)⁠까지 같은 방법으로 다룰 수 있게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곡면의 성질과 그 위의 함수 공간의 크기를 잇는 리만–로흐 정리를 사상에 관한 정리로 일반화한 그로텐디크–리만–로흐 정리입니다.

그가 겨냥한 큰 문제는 1949년 앙드레 베유가 내놓은 추측들이었습니다. 방정식 x2+y2=1x^2 + y^2 = 1을 나머지 셈으로 풀어 봅시다. 5로 나눈 나머지⁠(remainder)⁠에서는 해가 (0,±1),(±1,0)(0, \pm 1), (\pm 1, 0)의 4개, 7에서는 8개, 13에서는 12개입니다. 소수⁠(prime number)⁠ pp를 4로 나눈 나머지가 1이면 p−1p - 1개, 3이면 p+1p + 1개로, 늘 pp에 가깝습니다. 더 복잡한 방정식에서도 해의 개수는 pp를 중심으로 일정한 폭 안에서 흔들립니다. 예컨대 y2=x3−xy^2 = x^3 - x의 해는 무한원점⁠(point at infinity)⁠을 포함해 13에서 8개인데, 이것은 p+1=14p + 1 = 14에서 6만큼 떨어져 있고, 1930년대 하세가 증명한 대로 그 차이는 213≈7.22\sqrt{13} \approx 7.2를 넘지 않습니다. 베유는 이런 개수들을 묶은 제타 함수⁠(zeta function)⁠가 리만 제타 함수⁠(Riemann zeta function)⁠와 비슷한 성질, 심지어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의 유사판까지 만족하리라고 추측했고, 그 증명에는 유한체⁠(finite field)⁠ 위의 방정식에도 쓸 수 있는 코호몰로지가 필요하다고 내다보았습니다. 실수⁠(real number)⁠ 위의 도형에서라면 구멍을 세는 도구가 있지만, 점들이 흩어진 유한한 모임에는 '연속'이라는 개념부터 없습니다.

그로텐디크는 이 문제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문제가 저절로 풀릴 만큼 넓고 깊은 이론을 먼저 짓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자신의 비유로는, 호두를 망치로 깨는 대신 물에 담가 두어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게 하는 방식입니다. 첫째 도구가 스킴입니다. 그는 방정식이 정하는 도형을 수 체계 RR마다 그 안의 해들의 모임 X(R)X(R)을 주는 규칙으로 보았습니다(위의 식). 실수에서는 원, 복소수⁠(complex number)⁠에서는 복소 곡선, 13으로 나눈 나머지에서는 점 12개, 유리수⁠(rational number)⁠에서는 (3/5,4/5)(3/5, 4/5)처럼 피타고라스 세 쌍⁠(Pythagorean triples)⁠에서 오는 무수한 점들입니다. 이 규칙은 수 체계 사이의 준동형⁠(homomorphism)⁠을 해 모임 사이의 사상으로 보내므로 하나의 함자이고, 요네다 보조정리⁠(Yoneda lemma)⁠는 이 함자가 도형을 완전히 결정한다는 것을 보장합니다. 도형을 '그것이 다른 모든 것과 맺는 관계'로 정의하는 이 관점은 범주론⁠(category theory)⁠이 기하학에 준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스킴의 정식 정의는 환과 층으로 하지만, 이렇게 함자로 보는 관점도 그로텐디크가 함께 내세운 것입니다.)

둘째 도구가 토포스입니다. 연속성⁠(continuity)⁠이 없는 곳에서 코호몰로지를 정의하려고, 그는 '열린 집합⁠(open set)⁠'의 개념을 '공간을 덮는 방식들'로 바꾼 그로텐디크 위상⁠(Grothendieck topology)⁠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공간에 대해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위의 층들, 곧 국소적인 자료를 이어 붙이는 방식들이 이루는 범주⁠(category)⁠라고 보아, 그런 범주 자체를 일반화된 공간, 곧 토포스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얻은 에탈 코호몰로지⁠(étale cohomology)⁠로 베유 추측의 대부분이 1960년대에 증명되었고(그 가운데 제타 함수가 유리함수라는 부분은 1960년 버나드 드워크가 다른 방법으로 먼저 증명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리만 가설의 유사판은 1974년 제자 피에르 들리뉴가 증명했습니다. 1958년부터 파리 근교의 고등과학연구소(IHÉS)에 있던 그는 디외도네와 함께 수천 쪽의 『대수 기하학 원론(EGA)』을 쓰고, 세미나 『대수 기하학 세미나(SGA)』를 이끌었습니다. 1966년 필즈상⁠(Fields Medal)⁠을 받았지만, 소련의 동유럽 군사 개입에 항의하는 뜻으로 시상식이 열린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70년 그는 연구소가 군에서 연구비를 일부 받는다는 것을 알고 항의하며 떠났습니다. 그 뒤 생태와 반전 운동에 뛰어들었고, 몽펠리에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1980년대에 수학계와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는 1,000쪽이 넘는 회고록 『수확과 씨뿌리기』를 썼습니다. 이 글은 오랫동안 복사본으로 돌다가 2022년 정식 출판되었습니다. 1988년 크라포르드상을 거절했고, 1991년 피레네 산자락의 마을로 옮겨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2014년 그곳에서 가까운 생지롱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토포스는 그의 손을 떠난 뒤 로베어와 티어니에 의해 논리의 모형으로 추상되어, 오늘날 타입 이론⁠(type theory)⁠과 호모토피 타입 이론⁠(homotopy type theory)⁠의 의미론에서도 쓰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곳. 도형을 해 모임의 함자로 보는 관점은 함자와 요네다 보조정리에서, 구조를 다른 것과의 관계로 정의하는 방식은 보편 성질⁠(universal property)⁠과 범주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셈으로 해를 세는 계산은 나머지 셈과 소수에, 개수들을 묶는 함수의 원형은 리만 제타 함수에, 유리수 해의 예는 피타고라스 세 쌍에 있습니다. 공간의 개념 자체는 위상수학⁠(topology)⁠에서 출발하고, 그의 구상을 이어받은 사람은 보예보츠키와 로베어입니다.

관계.

가운데가 이 사람, 둘레가 이어진 인물들입니다. 선의 색은 관계의 종류(초록 스승·제자, 파랑 함께 연구, 보라 편지, 빨강 논쟁, 주황 영향)이고, 다른 인물의 페이지에 적힌 관계도 함께 모았습니다.

  • 영향을 받음 새뮤얼 에일렌베르크 — 카르탕과 에일렌베르크의 『호몰로지 대수』(1956)가 가군에서 세운 방법을, 1957년 도호쿠 논문에서 아벨 범주 전체로 넓혔습니다.
  • 영향을 줌 블라디미르 보예보츠키 — 그가 1960년대에 구상한 '모티브'를 보예보츠키가 모티브 코호몰로지⁠(motivic cohomology)⁠로 상당 부분 실현해 2002년 필즈상을 받았습니다.
  • 영향을 줌 윌리엄 로베어 — 그로텐디크가 기하학을 위해 만든 토포스를, 로베어와 티어니는 1969–70년 몇 개의 공리⁠(axiom)⁠로 추상해 논리의 모형으로 삼았습니다.

연표.

  • 1949년 낭시로 가서 로랑 슈바르츠와 장 디외도네에게 배우다
  • 1953년 무한 차원 함수 공간의 텐서곱과 핵 공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다
  • 1957년 도호쿠 논문에서 아벨 범주를 도입하고, 그로텐디크–리만–로흐 정리를 증명하다
  • 1958년 새로 생긴 고등과학연구소(IHÉS)에 자리를 잡다
  • 1960년 디외도네와 『대수 기하학 원론(EGA)』을 펴내기 시작하고, 세미나(SGA)를 열다
  • 1966년 필즈상을 받다
  • 1970년 연구소의 군사 연구비에 항의하며 IHÉS를 떠나다
  • 1974년 제자 들리뉴가 그의 방법을 바탕으로 베유 추측의 마지막 부분을 증명하다
  • 1983년 회고록 『수확과 씨뿌리기』를 쓰기 시작하다(1983–86)
  • 1988년 들리뉴와 함께 선정된 크라포르드상을 거절하다
  • 1991년 피레네 산자락의 마을로 옮겨 은둔하다

이 인물이 나오는 긴 글

타입 이론과 범주론 증명은 프로그램이다 러셀의 역설을 막으려던 '타입'이 프로그램의 실수를 막는 장치가 되었다. 명제를 타입으로, 증명을 프로그램으로 읽으면 둘이 규칙 하나하나까지 맞아떨어진다. 오늘날 수학자들은 그 사실로 컴퓨터에게 증명을 검사받는다. 수학의 오류 틀린 증명이 만든 수학 틀린 증명은 흔하다. 드물게, "정확히 어디가 틀렸는가"라는 물음이 새 분야를 낳는다. 코시의 합 정리와 균등 수렴, 라메의 증명과 아이디얼, 켐프의 사슬, 푸앵카레의 회수된 논문과 혼돈, 프레게의 법칙과 러셀의 편지, 보예보츠키와 증명 보조기까지. 오류는 대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하나로 여긴 자리에 있었다. 범주론 화살표만으로 본 수학 최대공약수와 교집합과 '그리고'는 같은 것이고, 화살표를 뒤집으면 최소공배수와 합집합과 '또는'이 된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묻지 않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보는 언어로, '자연스럽다'는 말의 뜻, 관계만으로 대상을 알아보는 요네다의 생각, 함자로 본 연쇄법칙, 어디에나 있는 수반까지 사이트의 여러 분야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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